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

2026년 6월 24일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 강론

— 별세하신 이영길 요엘님을 기억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교회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대부분의 성인 축일은 그 사람이 죽은 날, 곧 하느님 안에서 완성된 날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경우에는 그의 죽음뿐 아니라 탄생도 축일로 지킵니다. 왜냐하면 그의 탄생 자체가 하나의 표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닫혀 있던 입이 열리고, 늙은 부모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고, 사람들은 두려움과 놀라움 속에서 묻습니다.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요한에게만 주어진 질문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 앞에서 교회가 묻는 질문입니다. 한 아이가 태어날 때, 한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한 신자가 평생을 살아갈 때,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의 장막을 거두고 하느님께 돌아갈 때에도 우리는 묻습니다. “이 사람의 삶은 무엇을 가리켰는가? 이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오늘 우리는 특별히 6월 3일에 별세하신 이영길 요엘님을 기억하며 이 말씀 앞에 섭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한 사람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이 누구를 향해 열려 있었는지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요한의 위대함은 자신이 중심이 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빛을 증언하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오실 분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자신을 크게 만드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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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우리는 풀과 같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열심히 살고, 아무리 많은 계획을 세워도, 우리의 생명은 우리 손안에 완전히 붙들려 있지 않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멈추어 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배웁니다.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망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사야의 말은 인간의 무상함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영원하신 하느님께 다시 맡기라는 초대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 마지막 진실이 아닙니다. 마지막 진실은 하느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우리의 호흡이 멈추어도 하느님의 말씀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흐려져도, 하느님의 기억은 흐려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손을 놓아도, 하느님은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루가복음의 장면을 보면, 요한의 탄생은 기쁨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기쁨 한가운데서 이름을 둘러싼 작은 논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관습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즈가리야”라 부르려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말합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즈가리야도 판에 써서 말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의 삶은 처음부터 은총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고백입니다. “주님은 은혜로우시다.”

우리가 별세자를 기억할 때에도 결국 남는 것은 이 고백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교우도 그 삶의 일부만 압니다. 인간의 삶은 늘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은혜로우시다.”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이해되는 일에도, 끝내 이해되지 않는 일에도, 주님의 은혜가 우리보다 깊고 넓습니다.

우리는 모두 풀과 같고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로 삽시다. 허무가 아니라 감사로 기억합시다. 죽음이 아니라 부활의 빛 안에서 서로를 하느님께 맡깁시다.

주님께서 이영길 요엘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빛으로 그를 비추시기를 빕니다. 남겨진 가족과 교우들에게 성령의 위로를 주시고, 우리 모두가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을 넘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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