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삶, 목자의 음성을 듣는 삶

2026. 4. 26. 부활4주일

본문: 요한복음 10:1–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넘치도록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풍성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젊은 날에는 풍성함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가늠하기 쉽습니다. 좋은 직장, 안정된 수입, 자녀의 성취, 사람들의 인정. 그것들이 마음의 넉넉함까지 가져다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우리에게 다른 진실을 가르쳐 줍니다. 많이 가져도 마음은 비어 있을 수 있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영혼은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도 밤이면 깊은 염려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풍성함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귀해지고,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 더없이 고마워집니다. 하루를 평안히 마치는 것조차 은혜로 다가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고, 양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름 없는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 견뎌낸 시간, 차마 말하지 못한 눈물까지 아십니다.

우리는 매일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더 가져야 한다, 더 인정받아야 한다, 아직 부족하다. 이런 소리는 때로 우리를 분발하게 하지만, 어느새 평안을 앗아갑니다. 비교하게 하고, 조급하게 만들며, 이미 받은 은혜보다 결핍만을 응시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소리를 ‘도둑의 소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앞서 실로암에서 한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함께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저 사람이 정말 소경이었는가, 안식일에 행한 일이 옳은가 하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도둑의 소리는 그렇게 감사를 훔치고, 평안을 훔치며, 오늘의 기쁨마저 가로챕니다.

주님의 음성은 다릅니다. 주님의 음성은 우리를 몰아붙이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너는 내 양이다. 내가 너를 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풍성한 삶은 모든 염려가 사라진 삶이 아닙니다. 염려 가운데서도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삶입니다. 시편 23편을 지은 다윗은 목숨이 위태로운 자리에서, 오해와 환난 한가운데서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풍성한 삶은 상처가 없는 삶이 아니라, 상처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마음을 다시 일으키시는 삶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조금씩 진실해집니다. 무엇이 진정 남는지를 알게 됩니다. 화려한 말보다 따뜻한 한마디가, 많은 소유보다 편안한 마음이, 성공보다 사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더 귀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에 가장 가까운 자리일 것입니다. 삶이 완벽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믿음, 많이 이루지 못했어도 주님 안에서 내 삶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인도 안에 있다는 평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를 조용히 들여다봅시다. 우리를 조급하게 하는 소리, 초라하게 만드는 소리, 감사를 빼앗아 가는 소리가 있다면, 그 소리에 마음 전부를 내어주지는 마십시오. 대신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들읍시다.

“내가 온 것은 너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오늘 우리는 앞으로 2년 4개월간 교회위원으로 섬길 일꾼들을 임명합니다. 이분들과 우리 공동체 모두가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더 깊이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춘천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 이제는 압니다. 풍성한 삶은 더 많이 가진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안에 머무는 삶임을.”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남은 걸음을 생명과 평안과 감사로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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