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잘 사라지기로 해요]

2023. 12. 22. 대림 4주일


안녕하세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콘 중에 하나가 성모 왕문 – ‘성모께서 엘리자벳을 방문하시다’라는 이콘이에요. 나이 많은 여자 한 분과 나이 젊은, 파란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서로 손을 맞잡는 그 그림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당시에 마리아로서는 예수님을 잉태하는 것 자체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는 그런 기적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이게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을 거예요. 이미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얘기할 때,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게 사실은 그 당시에 굉장히 귀족층이라든가 왕족 이런 사람들한테 붙이는 칭호래요. 그런데 그냥 갈릴레아 뭐 이런 데 살고 있는 그냥 시골에 있는 젊은 아가씨한테 천사가 나타나서, 마치 저기 고위층에게 얘기하듯이 은혜를 가득히 받으신 이어 이렇게 얘기하니까, 마리아가 그때 굉장히 깜짝 놀라면서 그 이야기를 들었죠.


하지만 인간은, 천사의 계시도 필요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인정과 공감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엘리자벳도 그 당시에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아이를 갖게 된 가졌잖아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나하고 비슷한 사람이니까 나에게 뭔가 위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그래서 찾아갔었을 것 같아요. 산동네에 살고 있는 엘리자벳에게 찾아가서 여기 보면 세 달 정도 있었다고 해요. 그 당시에 사회에 그걸로 봐서는 제 약혼한 상태인데, 일찍 임신한 것이 금기시되고 그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아기가 낳을 때까지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렀죠.


그렇게, 우리 인간은 살면서 정말 어떤 그런 공감과 옆에 있는 사람들이 ‘괜찮아’라고 이야기 해 주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참 그런 기억이 어렸을 때 있었나 생각을 해보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정말 그런 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전학을 가면서 굉장히 많이 위축이 돼 있었고 그 당시 학급이 60명 70명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학생들 한 명 한 명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기가 어렵고, 저는 주로 야단을 많이 맞고 살았는데 5학년 때 선생님은, 잘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야 너 참 잘했다’ 이렇게 몇 번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는, ‘그래도 우리가 선생님이 좋아하는구나’ 이런 느낌을 가져서 그때 좀 자신감도 생기고 학교에 가는 것도 더 좋아졌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에 나는 걸로는 몇 번 되지 않지만 그 짧은 그런 몇 마리가 힘을 주었어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남의 짐을 져주기는 정말 어렵고 자기의 그런 짐을 지고 가기도 벅차지만, 그 중에 조그만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한 5천 원어치라도 던져 줄 수 있으면,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삶의 운동력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계시만 가지고서는 부족한 옆에 있는 누군가가 사람이 격려해지고 위로해주는 것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입니다.


대림절기도 다 지나가고 이제 자주색 영대를 하는 날도 이제 다 끝나고, 대림초 네 개도 다 이렇게 켜지니까, 아 정말 한 해가 저무는 감회가 새롭습니다. 요즘 집에 있는 사진첩들을 다 청소하면서 봤더니 옛날에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어요. 근데 20년 전 사진을 보니까 ‘아 이런 때도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고, ‘아 그 이때도 살아 있었구나’, 그래서 굉장히 낯설게 옛날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요즘에 ‘안리타’라고 하는 분의 시집을 지금 두 권째 읽고 있는데 거기에 ‘살아진다 사라진다’라고 하는 시집입니다. 올해를 마감하는 저의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이 시인이 살다 보니까 사는 맛이 없을 때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살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살고 싶다’ 그런 때도 똑같이 살아지는 거죠. 그런데 또 한편, ‘떠나가지 말라고 해도 떠나가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그 계절 속에서 내가 이렇게 나의 하루하루가 사라지고’, 그렇게 저의 올해 한 해가 사라지는 것처럼, 시인의 인생도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원하든 안 하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사라지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네요. 마지막 구절만, 세 문장이니까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네,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지고 살고 싶은 날에도 살고 있는
이런 알 수 없는 생의 한가운데를 올해 서성입니다.
단지 우리 잘 살아지기로 해요.
그리고 우리 잘 사라지기로 해요.

제가 희년교회에 온 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이제 서로 조금 편해질만큼 시간이 흘렀네요. 이곳에 와서 저희가 나눈 것은 굉장히 적지요. 주일날 1시간, 2시간 나눈 거지만 그것이 서로들에게 힘이 될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라지고 있는’ 소중한 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이 시간에, 조그만한 그런 격려와 힘이 서로에게 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로 2025년을 맞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성모가 엘리자벳을 만난 그 기쁨으로, 우리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이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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