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과 영국의 ‘선교형 교회’

지난 2016년 6월에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과 영국의 선교형 교회 – 선교적 교회론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나왔습니다. 이 연구는 선교 상황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신학을 탐구하기 위하여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과 영국 성공회의 교회 개척 보고서 선교형 교회를 접맥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 기독교왕국이후와 교회

뉴비긴 신학의 중심 질문은 ‘기독교왕국이후’의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뉴비긴에 의하면 교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게 된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면 돌파밖에 없습니다. 기관이나 제도나 힘보다는 회중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복음의 호소력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이란 교회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 속에 심어진 회중들 또는 작은 교회들입니다. 새로운 표현들의 다양한 사례들과 신학들과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 경험과 신학들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동일한 모티브, 즉 선교와 복음 증거와 회중 등을 추적하여 보면, 현재의 새로운 선교적 시도들에 도움이 될 하나의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 기독교의 선교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이 때에 이러한 맥락적 이해, 교회론에 대한 반영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상황을 배경으로, 기독교왕국 해체 후 서구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학의 자취를 뉴비긴과 ‘선교형 교회’를 연결하여 추구하고자 하였습니다. 

2. 뉴비긴의 선교-세계-교회

뉴비긴 신학의 주제는 크게 선교, 세계, 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뉴비긴의 선교 이해는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가 자각한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교회의 부가물로 보아서는 안되며 교회는 선교의 대행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선교 신학의 출발점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발견하여야 합니다”.

뉴비긴.jpeg

뉴비긴의 교회관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1962년을 전후로 크게 전환을 이루는데, 기존의 배타적이고 교회 중심적 선교관에서 삼위일체 신앙에 기반한 선교학으로 나아간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뉴비긴의 새로운 교회관은 성경을 읽어가면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첫째는 구약에서 세속적인 사회의 순례자였던 아브라함의 생애에 대한 묵상이었고, 둘째는 신약에서 예수의 제자 파송에 관한 묵상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제자들은 성경공부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출정을 앞두고 사령관의 연설을 듣는 장병들과 같았습니다. 교회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삶의 현장, 즉 자신들이 일하고 생활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드러내도록 파견을 받습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회중들’이 세속 사회의 선교를 위한 뉴비긴의 교회상입니다. 이와 같이 뉴비긴은 세속적인 세상에 순례자로 부름받은 공동체, 세속적인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보냄받은 공동체로서 회중을 교회의 원형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증언하는 회중’ – 이것이 뉴비긴의 교회이며 선교의 핵심입니다.

3. 교회개척과 새로운 표현 

2004년의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영국 사회의 변화, 영국 성공회의 교회 개척의 개괄, 국내 선교의 신학과 교회론, 새로운 표현들, 방법론들과 구체적 제안들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이보다 선행한 영국 성공회의 보고서 새땅 열기‘와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이 두 보고서의 공헌은 온건한 어조로 다양한 교회개척 시도들을 정당화해 준 데에 있습니다. 교회개척과 새로운 표현은 지역, 이웃, 문화, 네트웍들 가운데 회중을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뉴비긴은 ‘마을 단위의 건강한 회중 공동체’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는데, 새로운 표현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 있습니다.

Breaking New Ground.jpg

교회 개척이란, 보고서 ‘새땅 열기’에 따르면, ‘목표가 되는 지역, 이웃, 문화, 네트웍 속으로 모체가 될 작은 회중을 이동시켜서, 마치 묘목에서 커다란 나무가 나오듯이, 그 토양에 뿌리 내린 회중을 성장시켜 내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보내는 교회를 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양 속에 씨앗은 썩어서 없어지고 새로운 나무가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개척은 복음의 토착화 과정이며, 뉴비긴과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동일한 통찰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표현이란 ‘교회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을 향한 보다 적극적인 선교’입니다. 넘어야 할 장벽이 많이 있기에 새로운 표현에는 ‘훈련된 개척 팀’이 필수적입니다. 새로운 표현의 파이어니어들은 신앙과 불신앙의 장벽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라’라는 미온적인 방법으로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협소해진 현대의 선교 상황에 절실히 요구되는 선교 실천입니다.

4. 보고서 ‘선교형 교회’와 뉴비긴

보고서 ‘선교형 교회는 뉴비긴을 네 번 인용하였습니다.

  1. 하느님 나라가 교단의 교회 전통보다 우선합니다. 교회는 네트웍 사이에 생긴 구멍들을 메우고 수많은 공동체들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교회개척의 원칙은 토착화이며, 그것은 목표 지역, 이웃, 문화, 네트웍의 상황을 무시하고 기존 교회들을 복제해 내는 과정이 아닙니다.
  3. 교회론에 관하여 – 교회는 세속 사회 속에 순례하였던 아브라함과 같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호소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모으시는 주님을 뵙기 위하여 나아가는 선교적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4. 교회 개척이 바울 선교의 핵심이었습니다.

Mission Shaped Church.jpg

이 인용들을 보았을 때 보고서에 나타난 선교 – 교회 – 교회개척에 관한 주요한 사상들에 뉴비긴이 공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뉴비긴은 기독교왕국이 끝나고,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에서 비주류로 밀려나고, 그간 교회가 누렸던 특권들이 사라진 상황을, 새로운 거듭남의 계기로 이해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선교하는 공동체,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사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회복할 계기로 여겼던 것입니다. 뉴비긴은 건강한 작은 공동체로부터 새로운 선교 상황에 대처하는 원동력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또한 교회가 내부에만 몰입해 있어서는 안 되며, 진정한 교회의 역할은 그 교회가 일할 자리인 세상을 통하여 계속 재정립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선교형 교회.jpg
선교형 교회 – 비아

뉴비긴이 제시한 ‘복음을 새롭게 증언하는 회중의 공동체’는 ‘선교형교회’의 교회개척 이론과 실천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보고서에서는 ‘회중’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유연성한 개념 – ‘새로운 표현’을 기반으로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교회개척과 ‘새로운 표현’의 경험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선교의 본질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길은,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론을 함축하는 명제 – ‘세상 속에 증언하는 작은 공동체’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표현은 레슬리 뉴비긴이 씨름하였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신학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오늘의 맥락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표현이라고 한다면, 이 선교적 교회론은 오늘 한국 기독교가 새로워지기 위하여 주력해야할 이론과 실천의 분야 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열쇄말: 레슬리 뉴비긴, 선교형 교회, 교회의 새로운 표현, 교회개척, 선교적 교회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On Call)

도서출판 ‘좋은 씨앗’에서 한국판 출간 (2010. 8. 20)

기독교 출판사 ‘좋은씨앗’에서 최근, CMS의 스튜어트 부캐넌 님이 지은 ‘On Call’을 한국어로 발행하였다. 그는 20여년간 CMS에서 일하면서 경험과 통찰을 이 책을 통하여 나누고자 하였다.  이 책의 첫 장에는 CMS 아시아의 두 사람의 추천 글이 올라 있다. 독서의 계절을 앞두고 여러분의 정독을 권하며 추천의 글을 올려 본다.

추천의 글 1.

저자 스튜어트님을 만난 것은 두 해 전 겨울. 그는 서울에서 선교사 면접에 대한 일 주일 간의 연구모임을 인도하고 있었다. 영국 센터에서는 선교 지원자가 오면 서류면접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2박 3일의 면접을 한다. 그 때 지원자는 여러 면접 위원들을 일대일로 번갈아 만나, 스스로의 소명에 대하여 강도 높게 점검을 받게 된다. 저자의 글에서 ‘씨름하다’, ‘긴장’ 등의 단어를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선발의 과정은 그야말로 힘겨운 씨름이며 정신적인 노동이다.

교회선교회 초창기 설립자의 글에서 ‘선교의 성패는 어떠한 구경의 사람을 보내는가에 달려 있다’라는 구절을 읽게 되는데, 선교사를 대포에 비유한 것은 인상적이다. 대포의 지름(구경)이 작으면 그만큼 작은 포탄이 들어가고, 당연히 날아가는 거리나 폭발력이 작을 수 밖에 없다. 그 반대의 경우 엄청난 넓은 영역이 그 강력한 대포의 영향력 아래 들어오게 된다. 그는 한 선교 단체의 인사 책임자로서, 이렇게 선교의 성패가 갈리는 선교 지원자 면접에 팽팽한 긴장을 느끼며 온 지혜와 정성을 다해 기도하며 씨름하였을 것이다. 그의 글에 성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자신의 소명을 점검 받고자 온 한 사람 한 사람을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아브라함, 야곱, 바울, 마태를 직접 만나는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 직접 ‘어디로 가라’ 그리고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고, 수많은 성서 인물들에게도 줄곧 그렇게 하셨다. ‘오늘 당신에게도 이렇게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전제이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지금 머무는 곳은, 진정 소명의 자리입니까?’ 목회나, 사역이나, 사업이나, 전문직이나, 육아나 어느 영역이든지, 스스로 이 죄 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는지 물어 보라고 한다. ‘예’라면 그 사명에 충실하게 그 자리에 머물고, ‘아니요’라면 다시 소명에 대한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on call’이다. ‘소명에 대하여’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출동 대기 상태’로 직역할 수도 있다. 전화만 오면 바로 달려나가는 소방서나 재난구호 센터, ‘땅’ 소리를 기다리는 육상 선수의 ‘준비’ 상태를 떠올리게 된다. 오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교의 사명으로 대화하시는데, 우리는 부르기만 하면 금방 달려 나갈 수 있는 깨어 있음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은 단숨에 읽어 내려갈 그런 책 같지는 않다. 친정 엄마가 딸에게 보낸 꾸러미 같다고 할까, 노련한 등산가의 배낭 속 같다고 할까? 영화를 보듯 생생하고 깊이 있는 성서 인물들에 대한 묵상들, 신앙적인 성찰들, 선교 단체의 경험과 일화들, 선교에 관한 유익한 정보들, 선교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 등, 때로는 곱씹어 보며 때로는 기도하며 정독을 하게 된다. 하나님 음성을 들으며 씨름하는 첫 두 장은 특히 더 많은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다.

이 책은 한 명의 선교사가 소명을 확인하고, 훈련 받고,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 조화를 이루며 일하고, 사람들과 협력하고 또 세워주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신 식민주의, 타 종교와의 관계, 성공주의, 전인적 선교, 재능, 교회 등 여러 주제에 대한 균형 잡힌 통찰과 개념을 얻게 해 준다. 예전에는 선교사로 가면 평생을 헌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수 년 또는 수 개월로 사역의 기간이 짧아졌다. 직업도 주로 종신직업이었던 것이, 이젠 짧아진 정년과 재택근무 시간제근무 등으로 유동적이 되었다. 은퇴 후에 건강하게 보람된 새 출발을 하는 사람들과 두 개 이상의 직종을 가진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도전하려는 이들의 기도가 더욱 일상화되고 중요해진 이 시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이 소중한 통찰의 보고이자 꼼꼼한 매뉴얼이 되리라 확신한다.

나성권 신부, 교회선교회 서울 센터 소장

 

추천의 글 2.

교회선교회(CMS)의 전신인 ‘아프리카와 동 아시아 선교회’는 1799년에 설립되어 이제 2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수 천의 선교사들이 서방으로부터, ‘복된 소식을 선포’하라는 부르심(call)에 따라, 복음을 지니고 서방으로부터 온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교회가 생겨났을 뿐 아니라, 의료와 사회 봉사, 교육 기관,
농업 발전, 사회 개발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img_0622지난 25년 동안 저 자신의 선교 여정을 살펴 보아도, 마약 중독자들 가운데 사역하기 위하여 저의 가족이 파키스탄에 간 것을 시작으로, 교회선교회의 지역 이사로서 유럽, 중동, 중앙 아시아, 남 아시아를 거쳐 최근에 동 아시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현재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n Dei), 즉 하나님께서 변화를 이끄시고 우리는 이 변화에 응답합니다. (이 변화는 하나님께서 이끄신 변화입니다.)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합니다. 지난 에딘버러 1910 선교대회의 메아리처럼 2010 선교대회가 일본과 남 아프리카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남으로의 이동, 즉 지구 남반구 주도하에,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물결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교회선교회는 계속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과 유럽에서뿐 아니라,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에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국 사무소도 교회선교회에 일고 있는 이 변화를 반영합니다. 그 변화란, 과거에는 유럽을 본부로 하였다면, 이제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자체의 선교 조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 커다란 흐름입니다.

이 책은 지구 북반구를 배경으로, 지난 두 세기 동안 선교의 방대한 경험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남반구가 세계 선교에 부상하고 있는 상황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둘째로 큰 선교사 파송 국가이고, 그런 의미에서 영어판보다 오히려 그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소명에 대한 느낌을 더 깊이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판의 출판은 저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새로운 발전입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소명에 하여 돌아 보는 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선교사를 보내거나 후원하고자 하는 목회자나 교회들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교회의 본질이 ‘선교 지향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선교 지향적’이며,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선교 사명이란 우리 옆집에 사는 이웃에 대한 선교에서 시작하여 먼 나라에 가는 선교의 사명까지 모두를 포함합니다.

모든 이들이 복된 소식에 부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신앙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필 심슨 목사, 교회선교회 아시아 이사

Dominic Shin is going to Mongolia

Thanks for your prayer for mission in Mongolia. Dominic Shin and his family are preparing to go there, following Joseph and Susanna Lee who has been sent from CMS Seoul Center to Ulaanbaatar in January 2010.

This was started in 11 March 2010 when Gamaliel Kim visited the center from Mongolia to find a partner for his new project. He served with program concerned illiteracy over eleven years in this capital city. He is preparing an NGO for bringing up ecological alternatives in housing, fuel, lavatories, agriculture and so on. Dominic is getting VISA as a student who studies Engineering, for setting an NGO may take time.

He has just returned from three month’s service to build the center building. They pile up long nylon sack filled with sands to build the house. The family will move to Mongolia during this autumn. I post his letter asking for your prayer and support.

Dear partners in mission,

I greet you in His love and grace. There were not few changes in steps of my family – the place to go is altered totally. I have prayed with wish to go to India for three years. It was happy time longing to go to Varanasi, but now I feel that He is leading me to Mongolia than Varanasi. I am going back to the first time when He called me, and discerning the steps which I would make.

I listen to a voice from inside of me. ‘Lord, if you allows, I am willingly to go.’ It is not easy to think about going to an unknown land, giving up a place which is getting familiar. The same throb and fear is in me and my family as the time of longing for India. Pray for me to go with courage.

I remember that Paul changed the way of his journey when he got an invitation to Macedonia during the night. (Act16:9-10) I pray for myself to be steady in choosing His plan and in giving up my own desires. Your prayer will make the steps firm toward the mission in Mongolia.

Love and bless you.

Dominic, Hyon-A, Hyon-Gyun and Se-Un

몽골에서 온 편지

센베노!

오늘 7월 11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기념일인 나담축제의 시작날입니다.  이날은 몽골 사람들은 세가지 운동 즉,  부흐(씨름), 활쏘기, 말달리기를 합니다. 오늘 부흐와 활쏘기를 관전하고 왔습니다. 말달리기하는 시합장이 멀고 시간이 지나서 관전하지 못했습니다. 부흐와 화쏘기는 버스로 30분거리에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러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좀 엉망이 된듯한 분위기 였습니다. 소나기가 약 1시간쯤 우리네 장마철 비처럼 내렸습니다. 시장끼를 달래려고 간의 음식점에서 호쇼르라고 하는 양고기 튀김만두같은 것을 비를 맞으며 사 먹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일터의 몽골 형제들은 지난 월급을 주어서 3일 휴가들을 보냈습니다. 휴가들이 끝나면 현장에서 다시 함께 사역을 진행할 것입니다. 저희들은 계속 현장에서 머물예정입니다. 여러 생태 자재들을 물색하고 기술 자문들을 구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무더울 정도로 햇살이 작렬하고 있습니다. 밤 9시가 다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몽골의 하루는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몇 일전 밤하늘을 보면서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은하수가 너무 선명하고 곧 별들이 내 머리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고 손만 뻐치면 잡히것 같은 수만은 별에 둘러싸인 그 날밤! 무엇으로 그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요?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 언젠가 함께 그 밤의 감동을 나눌 날들을 기대해 봅니다. 저희 숙소 게르위에는 항상 북두칠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혹시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발견하신다면 그 아래에서 제가 잠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유난히 은하수를 가로질러 유유히 빛나고 있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유난히 그들의 못다이룬 사랑을 속삭이는 밤인듯하여 저도 두고온 사랑하는 이들이 사뭇 보고싶어 말없이 눈물적시는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늘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은 이들! 그들을 제가 가슴에 품고 오늘 잠들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산 다미아노 십자가

1980년대에 처음 묵주기도를 시작했던 린 바우만 신부님의 묵주에서 산 다미아노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노랑과 주황의 밝은 색으로 빛나는 이 십자가 모양의 이콘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는 듯하다. 이 이콘에 대한 이야기는 성 프란시스의 젊은 시절에서 시작된다.

프란시스는 전쟁과 포로 생활로 건강을 잃어 거의 죽음에 이르렀으나,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몸이 허약하고 영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은 그는, 그가 그동안 추구해 온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께 더 많은 시간을 드리고, 더 마음을 열어 드렸을 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이 낫자, 그는 아시시의 숲과 작은 예배당 근처를 거닐면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에게 곧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은 그 분 앞에 머물렀다.

그가 자주 갔던 곳이 산 다미아노 교회였는데, 성벽 밖 벼랑에 반쯤 무너진 채 방치된 곳이었다. 이 폐허에 실물 크기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아이콘이 달려 있었다. 1206년 여름 어느 날 그 근처를 걷다가, 안으로 들어와 기도하라는 영적인 이끌림을 느끼게 되었다. 이 내면의 소리에 따라, 그는 계단을 내려와 어두컴컴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와, 낯익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서 무슨 분부를 하실지 기다렸다.

기다림의 간절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 보았을 때,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는 기도하였다. “지극히 영화로우신 하느님, 제 마음 속 어둠을 비추소서. 옳은 믿음과, 확고한 소망과, 온전한 박애심, 분별력과 지식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하고 참된 명령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지극한 고요 가운데 그는 이 기도를 반복하면서, 마음 속에 못 다한 기도가 이 한 마디에 담겨 나올 때까지 계속 하였다.

어느 새 아이콘의 눈은 떠 있었고, 프란시스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움직임은 그에게 놀랍기 보다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 때 십자가에서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 왔는데, 그것은 착하지만 말귀가 어두운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가 일러주는 그런 목소리였다. “프란시스야, 나의 집이 무너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니? 나를 위해 이 집을 다시 지어 주렴.”

그것이 그의 사명(mission)이 되었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그 무너진 건물을 다시 지어, 예배 공간으로 재건하였다.

산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시신이 아니라, 영원 불멸하신 하느님께서, 생명의 원천으로서 부활의 소망을 빛으로 발하고 있다. 구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빛은 연민을 품은, 그러나 왕과 승리자의 강인함을 담고 있다. 손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 보다는 우리를 위한 탄원과 축복의 손길로, 평온함과 부드러움을 나타내 준다. 십자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영원한 삶의 고결함과 평온함을 보여 준다.

십자가 위에는 천사들에 둘러 싸여 승천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손 주변에는 그분의 놀라우신 희생에 대하여 전하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곁에는 왼쪽으로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 오른 쪽으로 막달라 마리아, 글레오파, 백인대장과 예수께 고침받은 그의 아들이 서 있다. 그 아래의 작은 인물로 왼쪽에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병정, 해면에 초를 묻혀 긴 막대기로 예수께 권했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예수의 무릎 오른쪽에 닭이 그려져 있는데,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하고 닭이 울 때에 통곡하였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발 밑에는 성인들의 그림이 있었으나 지워져 흐릿하게 되어 있다.

산 다미아노 십자가를 새로 고안한 묵주에 달며 린 바우만 신부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그토록 십자가를 사랑하고 응시했던 프란시스와 클라라를 생각했을까, 영원한 생명의 빛을 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했을까. 십자가를 묵상했던 오래된 찬미의 가사를 떠올려 본다.

“우리는 흠숭하고 찬미하나이다.
그리스도여.
당신은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속하셨나이다.

팔목에 지니도록 만든 묵주

목걸이나 팔찌로 쓸 수 있는 묵주들이 있다. 보통 가방이나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는 것에 비해, 몸에 지니는 경쾌함과 색다를 느낌이 있다.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매일 머리 맡에 묵주만 놓아 두면 뭘해요’라고 어머니에게 묻곤 한다는 어느 청년에게, ‘그냥 지니는 것도 기도가 되지 않을까 ‘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20분씩 매일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고 싶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기도를 드릴 때 손이 얼마나 편한가를 늘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 만든 묵주는 두 겹으로 손목에 끼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팬던트 형으로 달랑거리는 멋도 있겠지만, 십자가를 묵주의 원 속에 넣었다. 기도는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십자가로 끝나지만, 기도하는 동안 십자가는 주간 구슬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실은 두 가닥을 쓰고, 매듭은 큰 간격에 14번, 좁은 간격에 5번 사용하였다.

응용: 꽃과 나뭇잎

성공회 묵주 이야기

7월 1일 새로운 달… 장마의 한 가운데 있어야 할 시기이건만 무덥기만 하다.시원한 빗줄기가 오히려 그립다. 오늘도 헐레벌떡 교회선교회로 향하여 들어왔다. 여전히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가끔 정해진 일이 없다는 것은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

큰 주제는 정해졌지만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고 어떤 색깔과 구도로 그림을 그려야 할지 정하지 못한 작가와도 같다고 할까? 신부님이 오늘 제안한 공부는 Lynn. C. Bauman 이 쓴 [성공회 묵주]이다.  5일전 성공회 묵주 blog를 만들어 주셨는데 ,  blog를 방치해 두었더니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성공회에서는 초기의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했던 묵주기도서와  묵주들을 사용하였다가 정교회나 가톨릭 교회와는 다른 기도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명상기도를 모색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더 전통적이고 오래된 기독교의 상징을 더하여 새로운 형태의 기도와 새로운 형태의 묵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Lynn Bauman에 따르면 묵주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offering)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는 묵주기도가 작은 성무(Little Office)라고 하였다.

성무(거룩한 의무)란, 수도원에서 3시간 마다 하루 8번씩 드리는 예배로서, 성공회의 아침기도(조도)와 저녁기도(만도)의 원형이 되었으며, 또한 개신교 예배의 원형이기도 하다. 수도원에서 발전된 이 예배는, 시편 교독(교송)으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원을 따지자면, 유대교 회당 예배에서 시작하여 초대교회 평일 예배양식으로 발전 되었다. 참고로 유대교 성전 제사는 기독교 성찬 예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성무는 주로 노래로 부르는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그레고리고 성가 음반을 통하여 들어볼 수 있다. 시편을 노래로 부를 때에는 각 절을 번갈아 교독(교송)하지만, 성공회 묵주기도는 대개 같은 구절을 반복하면서 깊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성공회 묵주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 그것도 성경말씀(주로 시편)으로 드리는 예배를 단순화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공회 묵주로 기도하는 시간은 하느님께 찬양하는 시간이며 예배하는 시간이며, 온전히 그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낭비’의 시간이다. 마치 예수님 발 앞에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같이 귀중한 시간과 마음을 하느님께 드리는 시간이다.

성공회 묵주와 상징들

산 다미아노 십자가고상(성 프란시스 십자가고상), 일주일을 상징하는 7개의 구슬 4그룹과 4개의 십자가고상 구슬, 초대구슬 1개를 모두 합한 33개의 구슬로 만들어 진다. 7개의 구슬 사이에 있는 과 구슬사이에 있는 4개의 십자가고상 구슬은 성스러운 시간으로의 초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원성으로 나아가는 것을 중요히 여긴다. 십자가고상 바로 위에 있는 초대구슬은 우리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여 영적 여정의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상징을 지닌다

* 성 프란시스 십자고상 –  샌 다미아노 십자가라고도 하는데, 동방기독교의 전통적인 성상에 기원하였지만 서양에서는 성 프란시스에 의해  사용되었던 고상으로 다른 페이지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초대 구슬 – 십자가다음에 오는 초대구슬은 작은 성무 , 하느님께 찬양과 경배로의 초대. 작은 성무로의 초대를 상징한다..

*4개의 십자 구슬 – 이 십자가고상 구슬은  7개의 週구슬을 나누어 주는 구슬로서 우리의 믿음인 십자가의 중심적 상징이 된다.

*주간구슬 – 일주일을 상징하는 7개의 구슬: 창조의 7일, 속세의 일주일, 교회력의 7절기를 상징한다.

성공회 묵주의 근본적인 상징은 시간의 수레바퀴를 상징하는  구슬들의 고리이다. 이 고리는 우리의 영적여정을 상징한다. 묵주는 주님과 구주로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적 순례를 상징한다.

이 고리들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들의 1년 절기를 상징하고,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자비와 희생의 중심 상징뿐만 아니라  분리나 갈등이 없이 인간과 하느님을 하나로 함께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그리스도는 시간을 초월할 뿐 아니라 시간의 고리로 부터 우리들을 들어 올려 순수하고 영원한 시간속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를 통해 영원하고도 순수한 현존으로의 여행을 생각하면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묵주기도를 드림으로써  세속적인 절기뿐 아니라  대림절, 성탄절, 공현절, 사순절, 성주간, 부활절, 오순절의 교회 절기속으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묵주에 나타난 數의 상징은 완성의 수들이다.

성공회묵주에 사용된   7개의 주간 구슬은 성공회 묵주에서 4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한달을 의미한다.  유대 기독교의 전통에서 7이라는 숫자는 영적 완성 혹은 완벽을 나타내므로 묵주 기도자는 완성을 위한 기독교인의 호소이기도 하다.

성공회 묵주기도는 33개의 구슬을 3번 반복하는데 이 3번은 성삼위 일체를 상징하며, 99는 중동전통에서 신성한 이름들의 완성된 수를 상징한다.

99개의 구슬에다 십자고상을 추가하면 전체 수는 100이 되는데 , 이 100이라는 수는 정교회 묵주에서 창조의 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같이 성공회 묵주안에 있는 각각의 상징들을 생각할때 관상 기도는 이들 묵주가 가지고 있는 각 상징들에 의해 풍성해지고 강화되어지며, 기도자들을 집중시켜 하느님의 현존안으로 빠르게 인도한다.

큰알 나무 묵주

일반적으로 묵주하면 나무 묵주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에 구슬 묵주를 만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구슬 묵주는 구슬 묵주 대로 나무 묵주는 나무 묵주대로 각각이 주는 느낌과 마음의 무게들이 다릅니다. 여기 올리브 묵주는 나무 묵주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나무의 질감과 색깔이 친숙하게 와 닿았습니다. 십자가는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십자가입니다. 올리브나무 테두리에 금속 십자가가 장식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다음에 보여 드릴 묵주는 붉은 대추나무알 묵주 입니다.  붉은 대추나무알 묵주는 올리브나무 묵주를 준비하다가 십자가를 선택하는 과정에 우연히  발견한 십자가의 느낌이 좋아  십자가에 맞는 나무알을 선택하다가 찾은 소재입니다.

무광 대추나무 알 묵주는 나무 소재의 묵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든 소재입니다.광택이 없는 느낌의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이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소녀의 풋풋함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공회 묵주 사랑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우연한 계기로 묵주를 만드는 친구를 보다가 저도 성공회 묵주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내일 드디어 지난 3개월 정도 만들어 왔던 묵주를 여러 교우님들께 전시 하려고 합니다.

전시전에 신부님께 보여드렸더니 갑자기 블로그까지 만들자고 하셔서 생각하지도 않게 그동안 만들어 왔던 것의 작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든 작품들이어서 부끄럽고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더 큰 발전을 향한 첫걸음이게에 의미가 있는 내디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묵주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시고 이 블로그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나성권신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0년 6월 26일

베로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