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간들을 많이 겪지만

2025년 4월 6일 사순5주일 (요한12:1-8)

어제는 밤에 산책을 갔더니 비가 온 거기에 벚꽃들이 아주 많이 피어있어서 아. 정말 너무나 좋았었고요. 긴 겨울이 지나고 이런 또 꽃을 또 우리들에게 보여 주셔서, 겨울에 지친 저희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으로 느껴졌습니다.

저희가 어려운 시간들을 많이 겪지만, 그런 때마다, 그 시대마다, 노래가 있고, 또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다정한 말이 있고, 또 집에 가면 몸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양식이 있어서, 그 어려운 시간들을 겪으면서도, 여태까지 살아온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마리아는 어려운 상황을 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식구인 라자로가 죽었다가 살아났고,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집을 방문한 예수님도 죽음과 이별을 예고하는 삼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쪽으로 못 내려오셨어요. 왜냐하면 예루살렘 쪽으로 오면은 바로 체포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동쪽 문이 가까운 베타니아에는 오실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바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거기까지, 친구들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 일행이 어떤 심정으로 베타니아에 오셨는지는 제자 토마가 한 말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같이 가서 우리 스승님과 함께 죽음을 같이 합시다.” 이런 장면이 있는 걸로 봐서는 굉장히 각오를 하고 이 자리에. 왔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삭막하고, 죽음이 앞을 가리고 있는 이 장면에서, 마리아가 300 데나리온, 당시 노동자가 꼬박 1년 동안 먹고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액수라고 하지요. 요즘과 달리 그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돈을 모으기는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가치가 되는 옥으로 된 병을 깨뜨려서, 그 향이 나는 기름을 다 쏟아부은 것이니까 어마어마했었을 겁니다. 그게 히말라야에서 나오는 나르드라고 하는 추출 허브라고 들었었는데요. 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그곳에서, 온 방안을 그윽하게 채우고도 남는 향기가 퍼져나게 된 것이지요.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직감을 하신 거예요. ‘아 내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을 건데 그 내 장례식을 위해서 미리 장례식을 해주는구나.’ 요즘에 장례식을 생전에 미리 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심정을 알아주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느끼면서 고마워 하셨지요.

그 당시에 제자들도 그거 상황이 어렵다는 건 알았겠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필연적으로 잡혀서 돌아가실 것을 염두에 두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마리아는 그것을 알고, ‘이제 며칠 있으면 잡혀가서 돌아가실텐데, 다 있어 봤자 뭤하나, 아끼고 아꼈던 향유 옥합을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는 이 사람들과, 수난을 앞둔 예수를 위해 깨뜨리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에게는 그런 꿰뚫어 보는 눈과 공감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의 헤아림과 행동이, 죽음을 직면한 그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이 순간도 사실은, 우리가 유한한, 죽음을 앞둔,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겠지요. 언젠가는 오늘 무심히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아 이때는 참 우리들도 참 힘있고 고왔었네’라고 할 날이 있겠지요. 그렇게 흘러가는 순간이기에, 오히려 더욱더 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짧고 유한한 우리의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이 마리아와 같은 그런 흘러 넘치는 향기까지는 못 되더라도, 정성을 다해 피어내는 향기, 자그마한 소망, 작은 친절 한 조각으로, 주변에 은은한 축복을 전하는, 그런 우리의 삶, 우리의 예배, 우리의 기도로,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항상 넘쳐나도록, 늘 힘을 주시도록 주님께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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