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표정]

2025년 2월 23일 연중7주일


얼마 전 밖에서 돌아온 딸이 ‘밖이 추워’라고 저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나도 알아’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딸이 낸 시험문제였습니다. 기대했던 답안은 ‘추웠겠구나’였다고 하네요.

지난 주말에는 노원 상계 나눔 교회의 강촌 피정에 동행하여 묵주기도를 드리고 왔습니다. 현관 근처에는 ‘웃으시는 예수님’을 그린 스케치가 담긴 액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의 표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 복음 말씀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오늘 복음 본문 중 몇 구절이 당시 로마 군대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최강의 군대로서 유대지방 일대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대에는 현지인에게서 물건을 징발할 권한, 부역을 시킬 권한, 채벌할 권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너무 가혹해져서 현지인의 반발을 사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 규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의복에 관하여, 밤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져 의복이 없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하여, ‘옷을 징발할 때에는 속옷은 남겨둬야 한다’라거나, 현지인을 때릴 때에는 ‘한 손으로 때릴 것이지 대놓고 양손으로 구타하지 말라’라든가, 물건을 운반시킬 때에는 얼만큼 거리의 한계를 정하여 노역을 시키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로마 군대의 징발, 부역 채벌 등이 자주 발생하였다면, 당시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을 구타한 로마 병정에게 ‘이쪽도 때려 주시지요’라고 하는 사람과 또 ‘어쩔줄 몰라하는 로마 병정’을 상상하면서, 흥미 깊게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었겠지요.

그러고 보니, 현대의 우리들은 예수님 말씀의 해석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너무 머리로만, 설명으로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눈물과 연민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공연히 별 이유도 없이 당시로서는 귀한 겉옷을 빼앗기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불려가 허덕이며 먼 길을 기진맥진 무거운 짐을 나르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뺨을 때리면 아무 말 없이 맞아야만 하는, 그런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안쓰러움과 위로하고 싶은 심정은 뒤로 한 채, ‘그리스도인의 생활 윤리’ 또는 ‘비폭력 방식’ 등의 무표정한 일반화를 하려 하지 않았나 돌이켜 봅니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항상 그분께 나아갑니다.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시고, 우리의 고생하고 염려하고 아파하는 것을 안쓰러이 바라보시는 주님,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신”(35b)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피곤하고, 분주하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 기도하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러한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열고 고백하며 그분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인자하심이 여러분과 저에게 일평생 함께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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