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인내와 희망의 혼합물]

2025. 2. 2. 주의 봉헌 축일


오늘 복음서에서 묵상한 ‘성 시므온 성가’는 30년 전 신학교 채플에서 매일 까만 옷을 입고 동료들과 저녁 때마다 드리던 기도의 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매일 저녁마다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주의 종을 평안히 돌아가게 하시는도다.
주께서 만민 앞에 세우신 구세자를
내 눈으로 친히 뵈었나이다.
이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요
이스라엘의 영광이로소이다.


매일 저녁 시므온 송가를 부르는 이 전통은 수도자들의 저녁 기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에, 하루의 일상생활에서 만난 주님을 감사하며, 휴식을 준비하는 고요한 이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줍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인생을 마감하는 엄중한 시간에도, 그동안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이런 평안한 노래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축가를 부른 시므온은, 근심어린 어조로 ‘가슴을 찌르는 고통’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감탄과 염려가 공존하는 순간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삶은 축복과 고난, 생명과 죽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 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오래 전에 15일 피정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용히 있다 보니, 더욱 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러고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회한과 아쉬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인생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그런 눈으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가까운 분들의 인생 속에도, 기쁨과 영광의 순간과 함께, 회한과 억울함과 고생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았던 아버지,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다가, 그 나이를 보니 30대 밖에 안 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세월이었지만 또한 세상의 물결 속에서 고생한 세월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곳에 함께 하신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했나요? 어떠한 기분으로 보았는가에 따라서 아쉬움과 감사가 교차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며 하게 됩니다.

신앙의 눈은 이러한 흙과 같은 인생의 진실과 연약함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걱정과 연약함을 주님께 고백하고, 시므온과 안나처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은 인내와 희망의 혼합물입니다. 인내는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영어에서 환자라는 단어가 ‘인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이라고 한 내용은, 원래 ‘이스라엘의 위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에 오지 않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떨고 서 있었는데, 결국 멀리서 오고 있는 버스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인내와 희망은 상황을 극복하는 힘이 됩니다. 그렇게 기다림으로 주님의 구원, 주님의 위안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허약한 자기 연민과 회한을 넘어서야 합니다. 신앙인은, 후회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사하고, 극복하고, 초월하고, 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고비길에 지금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지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심지어, 죽음의 엄중한 고난이 앞을 가려도, 우리는 시므온과 안나처럼, 희망을 품고 기다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기다림의 끝에 ‘이제 이 종을 평화 가운데 나아가게 하시나이다’라고 하는 겸손와 감사의 신앙생활에 더욱 깊이 이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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