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5. 성탄 2주일
복음: 요한 1:10-18
10 ¶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14 ¶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15 ¶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치기를 “그분은 내 뒤에 오시지만 사실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이다.” 하였다.
16 ¶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 17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18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올해 새해 첫 예배인데 이 새 예배를 요한복음 1장으로 시작하니까 너무 감회가 새로운 것 같아요.
전에 요한복음 1장이 화려하게 적힌 액자가 있어서 알아 보았더니, 오래 전 라틴 전례에서는 미사가 끝날 때마다 사제가 제대 위에서 요한복음 1장을 읽었다고 합니다. 성육신의 신비를 신자들과 함께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한복음 1장의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과 신앙의 진리를 정말 깊게 담고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하느님의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직접 오셔서 정말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맡겨주셨습니다. 성육신의 신비 또는 강생의 신비가 얼마나 우리들에게 큰 기쁨인가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개신교는 공생애의 종교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같이 제자들과 사람들과 함께 시련도 당하시고 어려움도 겪으시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는 거기에 굉장히 초점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면.
- 정교회는 부활의 포커스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부활에서 정교회는 굉장히 부활심장이에요. 부활심장이 중요하고 승리하신 그리스의 영광에 굉장히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래서 러시아 대문호 중에 부활이라는 글을 쓰신 분도 있고 그런 게 굉장히 우연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 그리고 가톨릭에는 뭐가 포커스냐 그러면 굉장히 고난에 초점을 맞춰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 그리고 거기서 온 세상의 인류를 위해서 고통을 받으신 주님 앞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렇게 들었어요.
- 그에 비해서 성공에는 어디에 초점이 있냐 라고 하면 어디에 있는 것 같아요. 이 성공에는 대단히 성육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이렇게 오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우리 성공회에서는 이 성탄절기와 이 공연절기가 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예수님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곳에 내려오신 성육신이지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것은 성화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이 미천하고 정말 하느님도 알 수가 없고 정말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하느님께 오심으로써, 저희들이 거룩하게 되는 그런 역사를 정말 우리 입장에서는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기도를 많이 하신 분들이 그 얘기하시는 거는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과정을 몇 단계로 얘기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깨끗하게 하신다고 그러죠.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옛날에 나쁜 짓 한 거 나쁜 생각 한 거 이런 걸로 어지러워 걱정 근심 이런 걸로 어지러워져 있는 우리들의 생각을 하느님께서 하나하나 이렇게 만지셔서 좀 가라앉게 해주시면.
- 그 다음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신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들 마음을 이렇게 착 비춰주시면 이것이 무엇이 진리였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이런 걸 알게되지요.
- 알게 되면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거룩하게 만드셔서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고 해서 이 성화를 마지막 단계로 하죠.
근데 그것이 어떤 단계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고 해요. 그래서 거꾸로 되는 경우도 있고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만 그냥 우리가 인식의 순서로는 정화시키시고 우리들을 밝은 빛으로 비춰주시고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으로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들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들의 성화, 우리들의 미천하는 우리들을 당신의 뜻으로 거룩하게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우리 서방교에서는 성화인데 정교에서는 또 좀 다르게 얘기해요. 정교에서는 신화라고 해요. 인간을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고 하였지요. 인간이 하느님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거룩하게, 그 하느님. 그 높은 곳으로 하느님의 뜻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주셨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굉장히 탁월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궁금해가지고 뉴스를 봤어요. 유튜브를 봤더니 밤새도록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은박지 같은 거 이렇게 하고 거기서 새벽 3시인데 거기서 새고 있는 게 나왔어요. 길에서 막 거기서 은박지 덮고 자고 그래서 너무 또 미안하기도 하고.
다 보니까 어리고 그래서 아휴 정말 나는 여기서 편안하게 이렇게 자고 일어나는데 정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어떤 고등학생이 한 얘기가 생각났어요. 자기네 엄마는 이찌기고 태극기 부대고, 자기 증조부는 친일파여 일본 순사랑 같이 막 웃으면서 사실, 손짓고 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여기에서 나와서 우리나라의 밝은 내일을 위해서 힘을 합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감추고 싶지만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더 좋게 만들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서 감탄했어요.
아 그래, 우리가 남자 여자로 갈리고 나이대로 갈리고 빈부로 갈리고 그렇지만 그런 것을 어느 순간에 다 뛰어넘어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멋있는 힘이 우리들 속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거 굉장히 불교적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서로 다 연관이 되어 있고 그래서 더 높은 그런 내 작은 나가 아니라 더 큰 나로 나아간다라는 생각을 하니까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서의 진리는 모두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다른 사람의 고통과 갈망과 기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지요. 오늘 읽은 말씀 구약에 말씀이 선포된 것도 사실은 노예생활의 그 어려움 속에서 그 반추로부터 나온 것이고 또 메시아를 기다렸던 그 갈망도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하는 그 어려움 가운데서 나온 것이지요. 또 그리스도가 오시는 걸 기다렸던 그 수많은 마리아나 그런 데 나온 것이고 그들의 그런 역사로부터 나온 것이지요.
오늘 우리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열망하는 그것도 옛날에 서울의 봄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본 우리가 저런 어두운 그런 것들을 다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그 어두움에 대한 그런 성찰로부터 이 밝음과 한 단계 높은 것으로의 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새해가 됐는데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정말 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고 힘들 것도 있어요. 그런데 옛날에 곤도마리에인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집안을 정리하면서 많이 버리라고 그러잖아요. 버릴 때 이렇게 버리지 말고 버리는 그 물건한테 고마웠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그러면서 버리라는 거예요.
어쩐지 그게 좀 어리석은 일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래요. 버리는 것도 그냥 확 이렇게 버리지 않고 그렇게 버리려면 좀 뭔가 마음에 더 못 버리는데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그러면서 버린다고 하는 그 마음이 더 잘 버릴 수 있고 내 마음을 또 버리는 나의 이런 마음을 달래주는 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난 한 해를 우리가 돌아보면서, 또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도 있고 그래서 그것을 또 버리려는 마음, 새로운 것을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요. 하지만 성경에 나온 많이 기다렸던 사람들처럼 지난 우리가 살아왔던 그 과거를 정말 감사하면서 그 소원에 우리의 모든 소중한 순간들과 소중한 희망들을 다시 잘 추려서 밝아오는 이 해에 우리가 맞이해야겠습니다.
이 하느님의 진리가 우리가 알 수가 없죠.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알기 쉽게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 진리는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 또 미천한 우리들을 그 하느님의 높은 뜻에 그 우주적이고 커다란 그 따뜻한 꿈속에 우리들을 동참시킨다고 하는 그런 막연하지만, 실낱같은 성육신의 희망을 일깨워주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희망으로 오늘 이 시간의 기도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